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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ça A/17-18

170821 리그1R FC바르셀로나 vs 레알 베티스

by 로♥ 2017. 8. 23.


1718 프리메라리가 1라운드
FC Barcelona vs Real Betis




     바르셀로나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이전에도 종종 그래왔듯이 나는 이번시즌 개막전 새벽에도 딱 한번만 알람을 맞춰두었다. 듣고 깨어날 수 있으면 보는 거고 아니면 그대로 아침까지 자고 싶었으니까. 나에게도 아침은 있고 현생이 있기 때문인데, 내심 아침까지 잠들기를 기대했지만 미친듯이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반짝 떴고, 시간을 확인하자 3시 10분이었다. 알람은 5분 뒤에 울릴것이고 사실 나는 내가 잠귀가 몹시 밝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쥐죽은듯 조용한 새벽의 3시였더라도 나는 분명히 알람 진동을 느끼고 깨어났을 것이다. 5분 동안의 갈등은 나를 약간의 죄책감 속으로 밀어넣었다. 이대로 모른채 다시 잠들고싶은 마음과 동시에 게임 시청을 다소 귀찮게 여기는 것이 그랬고, 혹시라도 바르싸가 형편없는 게임을 하는게 아닐까 노파심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바르싸가 형편없는 게임을 하는게 아닐까 걱정을 하다니.
내 사랑하는 선수들의 실력을 의심해서는 당연히 아니지만 이번 시즌의 오프닝 게임이었던 슈퍼컵을 본 팬이라면, 최근 구단 분위기를 알고있는 팬이라면 내 입장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 바르싸의 문제는 선수들의 기량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지. 이제와서야 과연 이 팀에 사활을 걸 가치가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기란 여간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을 떴고, 어김없이 레오를 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프리메라리가가 시작되었다.










1-0 새시즌 바르싸에 첫 골을 선물한 토스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느 선수의 발끝을 스쳤든 우리팀 스코어보드만 올라가면 그만^_^





한때 최소 메시(2)로 활약했던 후배를 안아주는 리오넬 메시.





2-0 세르지 로베르토 추가골





결과적으로 말해서 꽤 마음 졸이며 관전하긴 했으나 결국 라리가 개막전을 놓치지않고 볼 수 있어 기쁘고 다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도 기쁘고. 우선은 팀이 이긴 것이 가장 기쁘고, 아주 만족스러운 경기력은 아니었지만 이제부터 시작되는 리그 릴레이를 기대하기에는 충분했기에 또한 다행이다. 물론 피케와 수아레즈가 부재중일때 이겼다는 것도 안도감의 한축을 담당했고 전반전 내내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울로페우(내가 단점으로 생각하던 것들이 여전해서 걱정했다)가 두 골에 기여한 것도 희망적이다. 발베르데의 진행방향 또한 여전히 내 끝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니, 나는 필드 위의 바르싸가 여전히 좋다.



























1라운드는 기쁘게 마무리 되었다.

그럼 이제, 지난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차전 실패 후 바르싸 분위기가 어떠했고 내 기분이 어떠했는지와는 무관하게 돌아온 축구의 계절에 대해 말해보자. 예의 슈퍼컵 경기는 패배에 대한 분노와 구단을 향한 혐오감을 넘어선, 내 팬질에 대한 서글픔을 느끼게 한 게임이었다. 나는 리오넬 메시를 더이상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고 내 선수들과 바르싸를 나 자신보다도 사랑하지만, 구단은 나로 하여금 드디어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이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을 안다. 나는 누가봐도 이방인이 맞고 환생하지 않는 이상-혹은 하더라도- 까탈란은 될 수 없으며 지금부터 국적 취득을 노리더라도 최소 10년 동안은 여전히 한국인일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그것을 알고있는 것과, 내가 애정과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어떠한 그룹이 내 처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은 천지의 차이가 있다. 수뇌부는 그것을 해냈고, 나는 그들의 촌스러운 마인드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확실히 해두자면 나는 까딸란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제 드디어 내 나라에서 살만해졌고 우리 대통령 잘 뽑아놨는데 내가 왜. 내가 원하는건 꾸레의 자리다. 언젠가 엘 클라시코를 앞두고 레오가 이런 인터뷰를 한 적 있지. ‘엘 클라시코는 단지 바르셀로나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어디에 있든, 이 클럽에 감정을 가진 모든 이들을 위한 게임이죠.’ 그 “리오넬 메시”의 이 한마디가 팀을 향한 충성심을 얼마나 고취시키는가. 내가 바라는건 고작 이런 정도인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라는 소속감과 양방향 애정, 충성심을 내보일 약간의 기회. 하지만 구단은 돈벌이를 원할 때에는 팬들의 이 투쟁심을 부추겨 ‘우리’라는 단어를 쓰지만 정치적 스탠스를 취할 때에는 철저히 핏줄에 호소한다. 이 치졸한 소거법에서 살아남는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축구판 역시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인다는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나는 누누히 말해왔듯 피치 위의 로맨스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 자신이 로맨티스트이며, 블라우그라나가 피치 위에 있는 그 모든 순간을 어김없이 사랑한다. 나는 자처해 호구가 되기를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마나 호구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는 알고싶지 않다. 지금 구단은 돈도 잃고 팬도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때에 아주 근본적인 궁금증이 인다. 구단은 과연 위기의식을 느끼고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