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ça S
140305 2013/14시즌이 끝나면 팀을 떠날 까를레스 푸욜
로♥
2014. 3. 7. 23:39
3월 4일 화요일
자정무렵부터 나는 펩의 마지막 기자회견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날은, 그 주는 어느것도 확신할 수 없는 밤이었지만 반대로 완전한 미지의 순간이기도 해서, 오히려 생각을 비운 것이 화근이었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나는 펩이 기자회견을 한 그 날, 그 전날도 그랬고 그날도 그랬듯 그 다음날도 여느 날과 똑같은 하루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다음 날은 아무리 노력해도 전날과 같을 수 없었다. 그날 아무런 준비도 못한채 얼빵하게 기자회견이 끝나길 기다린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2014년 3월 4일 화요일의 자정 무렵, 학습은 효과를 발휘했고 나는 오늘이 그날의 데자뷰가 될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클릭만 하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기자회견의 라이브 스트림 주소와 눈싸움을 할때부터 이미, 이걸 클릭하는 그 순간부터 어느것도 되돌릴 수 없을 것임을 예상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주장, 카를레스 푸욜이 돌연 기자회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실수는 여전히 반복되었는데, 내 예상은 은퇴였고 푸욜은 아직 축구선수로서 뛰길 원한다는 것만이 달랐다. 물론, 이 역시도 예상하지 못한바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뭐가 더 나은 선택인지 이미 알고있었을 뿐이다. 내 글을 꾸준히 봐온 사람이 있다면 내 성향 역시도 어느정도는 짐작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손을 떠난 것이 다른 곳에 있는 꼴은 제 정신으론 못보거든. 블라우그라나를 입었다 벗은 다비드 비야를 보듯, 푸욜을 보며 번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냉정히 따질 것은 따져야지. 내 인생에 바르싸가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푸욜이 없었던 적은 단 한시즌도 없다. 푸욜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다. 막연히 ‘언젠간 푸욜도 은퇴할 날이 오겠지만’ 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막연하다는 것은 당장은 닥칠 일이 없음을 알고있을 때에나 곁들일 수 있는 단어거든. 단지 ‘내가 좋아하니까’ 팀에 끼고있고싶은 플레이어인 다비드 비야와 팀의 ‘주장’은 다르다. 같을 수가 없다. 리더의 부재는 그 무엇보다도 심각히 생각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3월 5일 수요일 자정
언젠가, 아니 거의 항상 푸욜이 부상 등으로 자리를 비우게 될 때면 ‘주장이 벤치에라도 앉아있는 것과 벤치에 조차 없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며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드시 돌아오길 바랐고 또 그러리라 믿어의심치 않았으며, 그는 항상 돌아왔다. 내가 그러길 바라고 꾸레들이 그러길 바랐으며 구단이 그러길 바랐고, 본인이 그러길 바랐기 때문에.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푸욜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면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이다.’ 이 불문율은 팀에 아주 중요한 문제다. 푸욜이 자리를 비우면 항상 퍼스트 캡틴 역할을 맡았던 그 챠비조차도, 푸욜을 믿고 기대기 때문에.
Puyol. “At the end of the season, I will stop being a Barcelona player. We will rescind the contract.”
“The recovery from my knee injury was more difficult than they said it would be. I cannot perform anymore at the level I'd want.”
푸욜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가 이번 시즌이 끝나면 팀을 떠날 것이라고 얘기했을때, 나는 어떤 반응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 몰라 우왕좌왕 했다. 그가 선수 생활을 더 유지하고싶어 하는데 벤치에라도 앉아있어 달라는 말은 너무 이기적이고 비참한 부탁임을 알고서 어떻게 푸욜에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세요 하자니 주장이, 정확하게는 푸욜이 없는 팀을 볼 자신이 없다. 물론 펩이 그랬던 것처럼 푸욜이 없는 바르싸도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익숙해질 때에는 챠비 차례가 될 지도 모르지. 푸욜이 팀과 팬을 어떻게 결속시키고 있는지 안다면, 푸욜의 존재가 후배들에게 어떤 귀감이 되고있을 것인지 안다면 누구나 이 허망하고도 슬픈 감정을 한번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푸욜이 없다는건 그런 문제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내가 무한한 사랑을 퍼붓던 선수들이 나이가 들고, 가장 뜨거운 시절을 함께했던 선수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계단 한계단 올라, 언젠가는 내 영광의 시간을 함께했던 그들이 팀을 떠나거나 은퇴해, 조용히 축구선수로서의 생활을 마무리 지을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빛나는 시절을 계속해서 되세김질하며, 어떻게 해도 붙잡을 수 없는 선수들의 등을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점에도 언젠가는 적응할 것이고 팀은 젊어질 것이며 여전히 활기가 넘칠 것이고, 황금시대가 반복되고 영광의 순간이 돌아오겠지만 그 모든것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3월 7일 금요일
시간이 흐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선수들의 이적이나 은퇴에 대해 생각치조차 않는 것도 아닌데도 막상 이렇게 닥치니까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이 이상 바르싸가 요구하는 수준의 플레이를 보일 수 없어’ 떠나는 푸욜이 다른 팀을 찾고 곧 은퇴를 앞두게 되는 것은, 선수 한 명의 인생이 아닌 축구사의 한 페이지가 다시 넘어가는 그 마지막 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기자회견이었다. 내가 축구를 알고 바르싸의 팬을 자처하고 여러명의 감독이 바뀌고 여러명의 선수가 나갔다 들어오는 동안, 푸욜이 없었던 적은 단 한 시즌도 없었지만, 이제는 푸욜과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와 시간만이 남아있다. 그는 6월 30일 이후의 계획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계획이 정해져있다. 덕분에. 6월 10일즈음부터 은퇴가 아닌 이적을 선택한게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가 다른 팀에서 뛰고 있을 푸욜을 보는걸 못내 못마땅해했다가, 다시 은퇴가 아닌 것에 기뻐했다가 다시 나를 두고 이적했다는 사실에 슬퍼했다가 다음날은 분노하고 다음날은 울적해 할 것이며 다음날은 허망히, 그리고 다음날은 다시 분노하고 또 그 다음 날은 슬퍼할 것이다. (우리팀에 없으니) 이적과 은퇴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고 슬퍼하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웃고 위로하고 책망하면서.
그는 정말 많은 순간을 바르셀로나와 함께 했다.
1995년에 바르싸로 이적해 4년 뒤인 1999년에 퍼스트팀으로 승격, 이후 무려 15년동안 퍼스트팀의 멤버로 주장으로, 모든 팬들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했다. 그 푸욜이라도 승격 직후엔 많은 고민과 고뇌와 고통과 번민을 겪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아주 새로운 유형의 센터백으로 거듭나는 동안의 모습을 지켜봐온 이들도 많은 생각이 스치겠지만, 바르싸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나의 시작에서부터 팀의 주장이었고 구단의 리더였고 스페인 축구의 한 축이었던 선수를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나 역시도 스치는 감상이 많다. 그가 많이 그리울 것임은 구구절절설명할 가치도 없고, 챠비와 이니에스타가 있고 또 새로운 선수들-레오와 피케-이 주장자리를 채워 팀을 잘 이끌어나가겠지만 아직은 그 기대가 현재의 주장을 잃은 슬픔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줄 순 없나보다.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아있는데, 이 시즌이 끝나면, 푸욜이 팀을 떠나는구나.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나의 주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