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ça A/17-18

180414 리그32R FC바르셀로나 vs 발렌시아CF

by 로♥ 2018. 4. 16.


1718 프리메라리가 32라운드
FC Barcelona vs Valencia CF





챔피언스 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나는 한계까지 차오른 분노와 비탄에 잠겨 생각했다. 토너먼트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이 상상이상의 분노를 느낄 정도라면 이제 정말로 축구를 멀리해야 될때가 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들더군. 바르싸가 없는 내 삶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 며칠간 이 문제에 대해 정말로 깊게 생각했다. 내가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정확히 리오넬 메시의 부재일지, 취미를 잃고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이 더더욱 공허해질 것에 대한 걱정인지 말이다. 현재의 내 삶은 양분되어 있는데 절반은 바르싸 축구를 보는것이고 다른 절반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일주일에 최소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최대 두 게임의 축구를 본다. 영화판이 좆같이 굴러가거나 좋아하는 배우들이 병크를 일으키면 바르싸에 더 많은 감정을 할애하고, 승패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영화에 더 많은 감정을 소모하면서 평균을 맞추고 있다. 이 균형을 잃은 내 삶은 어떨까? 리오넬 메시가 없는 나는?


 


다가오는 바르싸 게임이 마침 축구를 보기에 최고로 좋은 토요일 늦은 밤에 시작하는 바람에 이 불행(!)을 지나치지 못하고 나는 다시 TV 앞에 앉았다. 발렌시아전은 항상 기가 빨리는 대진이긴 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경기는 재미 있었고, 재미 없었다. 무엇보다 지난 경기의 분노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에 종종 씰룩이는 입꼬리와 자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히느라 평소보다 배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다. 또 고민의 끝을 보지못한 것도 내 집중력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바르싸가 이기는 것을 보니 무엇보다 좋더군. 서글프게도.




 






1-0 루이스 수아레즈




나쁘지 않은 타이밍에 들어간 수아레즈의 선제골.
불과 얼마전까지 트레블의 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이후 첫게임이라 솔직히 말하면 걱정을 더 많이 했다. 리그는 무패중이지만 그래서 뭐? 리그 무패행진이 챔스 탈락의 충격을 완화해주진 않는 것이다 -꾸준히 말해왔듯이 나는 무패우승은 하면 좋겠지만 못한다고 해서 대단히 아깝거나 통탄스러운 일이라곤 생각하지도 않고-. 중의적인 의미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이겨서 다행이고 좋다.





개중 손에 가장 많은 땀이 난 순간



불가항력이긴 했지만 움티티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발렌시아에 대단히 좋은 찬스를
내주고 마는데 피케의 집념이 팀을 살렸다. 정말로 득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방어였다.


직후 바르싸는 코너킥 찬스를 하나 얻게되는데



자리잡으며 형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움티티가 귀여워서(ㅋㅋㅋㅋ)





그리고 그 코너킥 찬스에서
2-0 사무엘 움티티 추가골




움티티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한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지옥과 천국을 오갔겠지(ㅋㅋㅋ). 물론 이 스코어로 경기가 종료 됐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후반 종료가 얼마 남지않은 시간에 패널티킥을 내주게 되어 최종스코어는 2대1. 물론 챔스와 달리 리그는 원정다득점제 우선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은 길게 가지 않았다. 물론 바르싸가 챔스에서 탈락한건 원정다득점제 때문이 아니라 형편없는 경기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굳이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챔스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하고 화가 솟구쳐 오르지만,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을 어찌 하겠는가. 다만 나는 조금 더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지긴 했다. 내가 바르싸에 기대하는 가장 큰 가치가 뭘까? 초심을 떠올리기에 나는 이미 너무 오랜시간을 바르싸와 함께 해왔고 아주 솔직히 말하건데, 이제와서야 사실 바라는 것도 크게 없다. 조금더 레오를 오래 보는 것, 그리고 그 레오가 행복한 모습을 더 많이 보는 것 정도면 될 것이다. 기저에 깔린 순진한 본심은 그러한데, 어째서 이토록이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까? 최근에 왕가위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한 말이 떠오른다. “최종적으로 손에 남는건 지금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원했던게 아닐 수도 있는 한 편의 영화인거죠.”

나는 이 문장의 여운에 꽤 빠지고 말았다. 결코 원했던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좋고 나쁜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선택의 결과란 때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바르싸를 보기 위해 결국 TV앞에 다시 앉았고, 여전히 내 팀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게 게임에서 져도 괜찮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_^) 참 모순적이게도, 이기지 못할 때도 그랬듯이 말이다.